새로운 진통제 시장이 열릴까?
수제트리진 : Suzetrigine
안녕하세요 여러분
바이오 신약을 과학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이오형입니다.
오늘은 기존 연재에서 벗어나, 블로그 독자님이 요청해주신 약물을 한번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수제트리진 이라고 하는 진통제인데요,
타이레놀이나 부루펜과 같은 일상적인 진통제와는 작용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타겟하는 통증의 정도도 다른 약물입니다.
수제트리진은 신경계에 직접 작용해서 고통의 감각을 줄여주는 약물입니다.
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면 마약성 진통제가 아닌가요?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버텍스 파마가 이번에 보였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고통에서 벗어나게될 마법의 약이 될지, 그 미래를 점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경제 전문가가 아닌관계로 이 약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어떤 시장을 타겟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과학적인 약물일 수록 개발사가 진짜배기라는 뜻이니, 이 부분을 생각하시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통증이란
먼저 진통제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통증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아프다고 느낀다는 것은 통각신경이 자극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통각신경은 온 몸에 퍼져있습니다.
통각 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중추 신경계로 자극이 전달되고, 뇌에서 통증을 인지합니다.
그럼 통각신경은 어떤 자극을 "통각"으로 인식할까요.
바로 열(온도), 물리적 힘, 화학적 자극을 통각으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똑같이 뺨에 손이 닿는다고 해도
힘껏 때렸을때는 통각으로,
살살 만질때는 촉각으로 느껴집니다.
똑같이 물에 들어간다고 해도
체온과 비슷한 물의 온도에서는 별 다른 느낌이 없지만
아주 찬 물에 들어가면 피부가 아프죠.
즉 아주 강한 자극이 들어올때 통각신경이 자극됩니다.
그런데, 약한자극에도 통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상을 입은 부위는 살살 만지기만 해도 아픔이 느껴지죠.
이렇듯 같은 자극이어도 상황에 따라 통각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통각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이기 때문이죠.
통각신경은 어떨 때 예민해질까요?
바로 조직이 손상될때 그렇습니다.
조직이 손상되면 큰일이 나죠?
조직의 손상은 위험에 대한 1차적 반응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나오는 물질이 통각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통각신경의 역치를 낮추는 것이죠.
정리하자면 통각은 아주 강한 자극에 의해서 생기는 감각이지만,
우리 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통각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 통각신경이 쉽게 자극되고,
이 자극이 중추신경계, 특히 대뇌까지 전달되면 우리는 통증을 느끼는 것이죠.
진통제의 원리
그럼 이제 진통제의 역할은 이 '통증' 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주 강한 자극에 의한 자연스러운 통증을 없애야하는 것이 아니고,
조직손상에 의해 통각신경이 예민해졌을때 발생하는 통증을 없애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통증의 매커니즘을
조직손상 - 손상물질 - 통각신경자극 - 중추신경계 전달
이라는 네 단계로 축약해보겠습니다.
그러면 각 단계에서 "진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대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조직 손상을 막기
이건 말이 안되죠?
2) 조직 손상에서 발생하는 물질을 제거하기
조직이 손상되면서 다양한 물질이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는 프로스타글란딘, 히스타민 등이 발생합니다.
이런 물질들이 통각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기때문에, 이를 억제하면 되겠죠?
그래서 NSAID 계열 진통제(이부브로펜 등) 이나 항히스타민제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국에서 쉽게 사는 진통제들이 대부분 이 군에 속합니다.
3) 통각신경의 자극을 저해하기
피부 바로아래에는 통각을 인지하는 통각신경이 있습니다.
이 신경들은 평소에는 둔감한 상태로 있다가,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물질에 의해서 특정 수용체가 활성화됩니다.
그럼 그 수용체의 활성화를 막으면 되겠죠?
4) 중추신경계를 저해하기
마지막으로 중추신경계에서, 실제로 "통증을 느끼"는 곳을 저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마약성 진통제가 있죠.'
아예 신경계를 마비시켜서 앞의 단계에서 나오는 모든 신호를 억제하는 것이죠.
그만큼 강력합니다.
아편류 진통제라고 부르는 헤로인, 양귀비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수제트리진이란 무엇일까?
수제트리진 Suzetrigine 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제 블로그의 1,2,3세대 약 분류 기억하시죠?
1세대 약, 화합물 약 입니다.
수제트리진은 위에서 설명한 통증의 네 단계중 어디에 작용하는 약일까요?
수제트리진의 설명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Suzetrigine (VX-548) is a non-opioid, small-molecule analgesic that works as a selective inhibitor of Nav1.8-dependant pain signaling pathways in the peripheral nervous system.
직역하자면
수제트리진은 비아편류의 화합물 진통제로
말단신경계의 NaV1.8 기반 통증전달경로를 억제하는 약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요,
말단신경계
NaV1.8
이렇게 두 개 입니다.
우리의 온 몸에는 통각신경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감각기에서 통각신호를 받아들이는 부분이 말단신경계이고, 이를 모아서 인지하는 부분이 중추신경계이죠.
통각 세포 중에서는 C 그룹 통각신경(C-fiber)이라는 신경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인데,
그래서 상대적으로 더 강한 고통을 전달합니다.
이 C 통각신경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이온채널이 열려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NaV1.8 입니다.
이 NaV1.8 는 C 타입 통각신경에만 있는 단백질입니다.
수제트리진이 이 NaV1.8 을 저해한다고 했죠?
즉 수제트리진은 강한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고통이 발생하면 이 신호를 말단신경계가 중추신경계로 전달해주어야 고통을 느끼는데, 수제트리진은 말단신경계의 C 타입 통각신경에 의한 신호전달을 저해하는 것이죠.
C 타입통각신경 아주 강하고 만성적인 통증을 발생시키므로, 이를 막음으로써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나타냅니다.
결론적으로는 마약성 진통제가 있어야 사라질 정도의 고통을 없앨 수 있는 것이 수제트리진인 것이죠.
반면 일상적인 고통의 인식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강한 진통제의 필요성
그런데, 꼭 진통제가 필요할까요?그냥 아픈걸 버티면 왜 안될까요?
그 이유는 통각신경은 "둔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냄새나는 화장실에 들어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냄새는 연해집니다.
그건 냄새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후각신경이 둔화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감각기는 둔화과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각은 둔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통증신호가 계속 있으면 통증에 반응하는 이온채널의 수가 늘어나서통증신호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신경가소성의 일종)
즉 점점 더 아파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강한 통증은 참으면 참을 수록 더 아파집니다.빨리 통각신경을 꺼버려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강한 통증에는 꼭 진통제를 써야합니다.
이것이 말기암이나 큰 고통을 겪은 환자들에게 굳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는 이유죠.
마약성 진통제 대신, 그 만큼 효과가 좋은 약을 쓸 수 있다면 아주 좋겠죠?
아마 이 역할을 수제트리진이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제트리진의 예상 효과
그럼 어떤 사람들이 수제트리진을 필요로 할까요?
수제트리진이 필요할 만큼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말기 암 환자, 수술 후 통증, 사고 통증 등을 겪는 사람들이 필요로합니다.
미국에서는 2022년 한 해 동안 아편류 진통제를 처방받은 사람의 수는 약 2백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이런 진통제를 처방받은 뒤, 마약중독자가 되는 경우는 3~19% 사이라고 합니다.
워낙 변인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연구라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 않지만,
확실히 마약중독자의 수가 늘어나는데는 아편류 진통제의 역할이 있긴 합니다.
이 시장을 모두 수제트리진이 대신할 수 있다면?
아주 큰 경제적 창출효과가 나오겠죠.
약쟁이도 더이상 늘어나지 않고, 부작용도 줄어들겠죠.
마약중독자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총생산 인구가 감소하고,
그에 따른 범죄율 증가나 풍속저하등이 우려되는데
이러한 부작용의 연쇄를 미연에 방지할 수 도 있겠죠?
여러분이라면 가족들이 수술을 받은 뒤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한다면
마약성 진통제를 선택하실건가요,
아니면 수제트리진을 선택하실건가요.
답은 명확하게 수제트리진이겠죠?
수제트리진 추가 고려 사항
지금까지 수제트리진은 임상 3상이 끝났고, 2024년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작용기전 명확하고, 필요성도 확실한 약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추가적인 부작용 여부입니다.
아무래도 신경세포 자체에 작용하는 것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임상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위험요인 중 하나입니다.
가격 역시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화합물약이다보니 제작자체가 아주 어려운 기술은 아닐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냥 화학합성을 하면 됩니다.
다만 개발과정에 고급인력이 아주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개발사가 이윤책정을 어떤 방식으로 할 지가 가격에 영향을 가장 많이 줄 것입니다.
버텍스사는 이미 자체개발한 약인 칼리데코를 너무 비싸게 팔아서 비난을 받은적이 있는 만큼, 수제트리진도 적절한 가격이 아닐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의 마약중독자 줄이는 정책과 잘 맞물리면 보험 적용이 잘 될지도..?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범용적으로 쓰이는 진통제가 아니라는 점도 유의해야합니다.
누구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타이레놀등과는 달리,
중증이상의 통증에만 처방을 받는 약이기때문에 대중성이 아주 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약들과는 달리 적응증이 특별히 정해져있지 않고,
강한 통증을 호소하는 모두에게 다 처방이 가능하다는 점은 장점입니다.
수제트리진 정리
강한 통증을 전달하는 C 타입 신경세포의 기능을 약화시켜서
중증 통증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진통제로 출시될 것이 기대됨
2024년 출시 목표이며, 기존 처방 되는 아편류 진통제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기존 아편류 진통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어 선호될 것으로 생각됨.
이상으로 수제트리진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올해안에 출시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특히 개발사인 버텍스 파마슈에틱스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높아지는 계기입니다.
버텍스 파마슈에틱스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약 중 하나인 트라이카프타의 개발사이기도 한데,
단순히 스크리닝해서 때려맞추는 식으로 약을 만들지 않고,
rational drug design, 즉 생각해서 약을 디자인 하는 방법으로 제약을 하고 있거든요.
조만간 버텍스사에 대한 분석도 진행해보겠습니다.
혹시 관심이 가시는 분은 트라이카프타 분석글도 읽어주세요.
참고로 트라이카프타는 매출액 10위안에 드는 블록버스터 드럭입니다.
트라이카프타
https://dueffect.tistory.com/65
감사합니다.
'이슈를 바이오의 눈으로 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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